전영환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공동대표(홍익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좋은 게 좋은 것' 에너지판 묵계 거부 진영 구분없이 쓴소리
"사명감 갖춘 리더와 독립규제기관 거버넌스·산업구조 바꿔야"

[이투뉴스] 물이 너무 맑으면 물고기가 없고, 너무 따지면 친구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실상 물고기는 물이 맑을수록 좋고, 진정한 친구는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 법이다. 전영환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공동대표(홍익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사진>는 ‘좋은 게 좋은 것’이란 에너지판의 묵계를 거부해 온 학자다.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음)’이 미덕으로 통하는 이 분야에서 필요하면 진영 구분없이 세게 할말을 했다. 

강의를 막 끝낸 전 대표를 2일 오후 홍익대 교수연구실에서 만났다. 전력계통에 관한 탄탄한 식견을 바탕으로 시장과 정책까지 깊이 논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전문가다. 전 대표는 한계에 봉착한 전력산업이 돌파구를 마련하려면 히딩크 전 국가대표 축구팀 감독과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 같은 리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단박에 거버넌스와 산업구조를 바꿔야 그나마 변화를 기대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정치권으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직격했다. 

전영환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공동대표 (홍익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전영환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공동대표 (홍익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

- 전력망 문제로 재생에너지 계통접속이 사실상 중단 상태다

“전력계통을 안정적으로 운영한다는 건 기술적 난이도가 높은 일이다. 지금까지는 한전과 전력거래소가 여유를 많이 갖고 운영했다. 송전선을 많이 건설하고, 발전기도 충분히 확보해 어떤 일이 터져도 지장이 없도록 했다. 이면에는 송전선로도 깔고 싶은 대로 깔고, 발전기도 예비력을 많이 가져갔다. 그러다 재생에너지가 증가하면서 마진이 줄기 시작했고, 송전선로 건설도 어려워졌다. 이런 상황이라면 운영환경을 고도화하고 새로운 예비력을 개발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10%대에서 (접속이)중단됐다는 건 송전선로와 계통을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시스템 자체가 안돼 있다는 뜻이다. 과거방식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 전력수요지-공급지 불일치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야권은 에너지고속도로를 건설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수요를 송전선을 깔아 지방에서 공급하는 건 어렵다. 그렇다고 수도권에 가스발전소 짓는 건 더더욱 해법이 아니다. 좁은 지역에 수요만 몰려있는 상태는 기술적으로 상당히 어렵다. 수요가 많은 곳엔 발전기도 많아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수요 절반 가까이가 수도권에 있고 에너지 밀도도 높은 곳은 송전선을 건설해 수요를 충당하는 시스템 설계가 맞지 않다. 에너지고속도로도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는 고속도로가 아니라 지방거점센터를 연결하는 고속도로가 되어야 한다. 지금 막무가내로 건설해 놓으면 나중에 쓸모가 없어진다. 지금부터 그런 개념을 한전 계획에 녹여내야 한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서 전 부처가 머릴 맞대야 하고 주기적으로 계획을 조정해야 한다. 용인반도체클러스터는 고민 한 번 하지 않고 짠 계획이다.”

-  전력거래소나 한전은 제 몫을 하고 있나

“바둑으로 치면 프로가 필요한데 아마추어 C급만 모아놓은 격이다. 100명을 모아놓은들 프로 1명을 당할 수 있겠나. 프로 5단 정도는 돼야 해(解)가 나올텐데 사람이 부족하다고 아마추어만 늘렸다. 답이 나올 리 없다. 전기연구원, 전력연구원, 에너지경제연구원 등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번 보라. 어떤 문제가 생기면 연구과제를 만든 뒤 예산을 확보해 1년 뒤에나 외부용역을 준다. 그러니 문제가 발생한 후 2년 뒤에나 결과가 나오고, 그것도 단편이다.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 그래서 독립규제기관을 서둘러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전력은 정책, 기술, 시장제도가 다 연결돼 있다. 기존 조직에서 정말 쓸만한 사람과 재야에 흩어져 있는 고수들을 모아 수시로 문제를 검토하고 해법을 제시하도록 해야한다. 형태는 독립규제기관이어야 한다. 산업부 조직과 지금 거버넌스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금 정부와 국회, 한전이 생각하는 것으론 해법이 나올 수 없다. 진짜 무언가 바꿀 생각을 하지 않으면 말짱 도루묵이다. 국회가 법을 만들어도 시행령과 시행규칙은 정부가 만든다. 전력분야에서 히딩크 같은 사람을 모셔 오고, 그가 모든 걸 바꿀 수는 없을 테니 곁에서 조정할 사람이 있어야 하고, 그를 지원할 독립규제기관도 필요하다. 조정자는 전 부처를 아우를 수 있는 권한이 있어야 한다. 지금은 뭔가 할 것처럼만 하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 자기 이해를 관철하려는 이들 뿐이다. 정의감, 사명감으로 뭉친 포항제철 박태준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을 찾고, 히딩크 같은 사람을 곁에 주고, 전문기관이 지원하게 해야 한다.”

- 상황이 이 지경이 된 건 누구의 책임이 가장 큰가

“모두다. 산업부도, 한전도, 전력거래소도 자기이익이 최우선이다보니 그렇다. 다 똑같다고 본다. 더 큰 문제는 산업구조다. 에너지가 산업화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공기업 독점으로 어떻게 산업화가 가능한가. 애초 안되는 걸 하자는 거다. 만약 한전 독점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 거다. 기업들은 살기 위해 무엇이라도 한다. 한전은 천문학적 적자가 나도 계속 가는 조직이다.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없다.”

- 시장개방을 거론하면 '민영화'라면서 거부감을 키울텐데

“전문가들이 제대로 자문하지 않은 책임이다. 공기업 체제에서 정부가 모든 걸 좌지우지하니 전문가라도 제대로 했야했고, 시장구조라도 만들어져 있었다면 그 자체로 잘 갔을 거다. 현 체제라면 누군가 이 문제를 정확히 잘 아는 사람이 사명감으로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추진력 있게 밀고 가야 해결된다. 현 시스템은 독점이라 그걸 움직일만한 힘이 없다. 능력은 기술적 지식과 철학에서 나온다. 지금은 탄소중립으로 가야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됐으나 많이 늦었다.”

- 일각에선 공공성을 강화하려면 공기업 중심으로 가야한다고 말한다

“그런 사람 중 어떻게 가야 하고, 어떻게 하면 변화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나. 에너지스타트업과 신산업이 성장해야 한다고 말들은 한다. 그런데 한전 독점체제에서 과연 어딜 비집고 들어갈 수 있나. 가령 가상발전소(VPP)를 한다고 치자. VPP는 기본적으로 작은 자원을 모아 하나의 발전소처럼 운영하는 거다. 자원을 모아 컨트롤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큰 발전소보다 비싸면 경쟁력이 없다. VPP가 경쟁력을 가지려면 소비자를 확보해 직접 전기를 팔기도 하고, 비쌀 땐 보유한 자원을 팔고 시장이 쌀 땐 가져와 팔 수도 있어야 한다. 판매시장 개방 없이는 불가능하다. 계약시장도 마찬가지다. 시장이 되려면 계약 당사자가 많아야 한다. 지금은 한전뿐이다. 그런데 계약시장으로 가자는 건 기존 풀(Pool)도 없애고 독점으로 가져가 정부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는 거다. 무지하거나, 정직하지 않다.”

- 윤석열 정부에 에너지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낫싱(Nothing)이다. 뭐가 있나. 그저 원전 건설뿐이다. 그걸 에너지정책이라 부를 수 있나. 원전이 앞으로 초래할 문제는 누가 책임지나. 만약 원전이 기대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쩔 건가. 원전의 엄청난 문제들과 한계는 다 무시하고 간 거다. 정책이라기보다 희망 사항에 가깝다. 인수위 시절엔 시장개방과 독립규제기관을 설립한다고 해 기대를 했으나 하지 않았다. 보수정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국민만 불쌍하게 됐다.”

- 그걸 비판하는 민주당 등의 야권은 잘하고 있나

“똑같다고 본다. 재생에너로 탄소중립을 이루겠다는 방향 설정은 맞았지만, 그 다음이 없었다. 2050탄소중립 시나리오와 NDC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걸 달성하기 위한 3년, 5년, 10년 단위 계획이 없었다. 산업부 등에 맡기면 된다고 생각했고, 챙기는 사람도 없었다. 가령 RE100 문제로 국내기업들이 필요한만큼 재생에너지를 조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됐을 땐 어떻게 할 건가. 그걸 해결할 수 있는 거버넌스가 돼 있나. 다시 산업부와 한전에 맡길 건가.”

- 정권이 달라지면 희망이 보일까

“누가 정권을 쥘지 모르지만, 여·야가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고 국정과제로 가져가면 모를까 지금 정치권 안에서는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여당인 국민의힘조차 전기요금을 정상화하지 않고 있다. 민주당은 잘못하다가 자기들이 다 뒤집어쓴다고 겁을 내는 듯하다. 과거 영국이 전기료부터 정상화하고 시장을 개방한 이유가 있다.”

전영환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공동대표가 홍익대 교수연구실에서 이투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전영환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공동대표가 홍익대 교수연구실에서 이투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한전은 육상 송전선로 건설이 어려우니 해저 HVDC를 건설한다고 한다

“한전은 2040년과 2050년 우리나라 송전망 체계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 지금은 자신들의 계획조차 앞뒤가 안 맞는다. 우선 몇 GW라도 깔자는 건 곤란하다. HVDC가 갖는 여러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말해야 한다. 재생에너지처럼 인버터 전원이 많아질수록 HVDC 운영환경은 열악해진다. 대용량 인버터 전원을 집중해 건설하면 HVDC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좁은 땅에 몰려 있는 계통이다. 단위 면적당 발전소 밀도도 전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런 곳에 HVDC가 추가될수록 취약해진다. 전력시스템을 집중적으로, 기술집약적으로 가져가면 안 된다. 발전소도, 수요도 분산시켜야 한다. 탄소중립을 하려면 석탄과 가스도 빠져야 한다. 지금 시스템이라면 앞으로 제대로 작동 안 할 게 뻔하다.”

- 한전은 어떻게 재편되는 게 바람직한가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책임지는 회사인데, 기술적으론 그걸 감당할 수준이 안된다. 외부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꺼번에 바꿀 수 없다면 판매시장부터 개방해야 한다. 한전이 계획하고 있는 송전망 계획 등도 전문 규제기관을 통해 교차 검증해야 한다. 어떤 조직이든 자기 이익이 최대화 되도록 계획을 세운다.”

- 전력거래소에 대한 평가도 엇갈리고 있다.

“만약 거래소 운영조직을 재생에너지 비중이 50%가 된 영국에 갖다 놓는다고 생각해보자. 제대로 운영이 가능할까? 거래소든 한전이든 주어진 한계 안에서만 일을 하다보니 결과의 한계도 분명하다.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은 엄청난 변혁이 필요한 시점에 그 구성원들이 주체적으로 변화를 이끌 유인이 없다. 에너지전환이란 엄청난 변혁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공적영역은 과거부터 그런 변혁을 이끌어 가도록 조직되지 않았다.”

- 일부 교수는 재생에너지만 너무 편애한다고 말한다

“2005년부터 재생에너지가 계통에 막 들어온다고 (운영이) 가능한 게 아니라고 얘기해 왔다. 지금은 그 단계를 지나 재생에너지가 계속 증가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얘기할 때다. 비중을 20% 이상으로 높이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그런데 다들 그 자리이다. 아직 석탄발전, 가스발전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난 바뀐 게 없는데, 내 주장이 과격하게 들리는 모양이다.”

- 올해 에너지전환포럼 상임공동대표를 맡았다. 포럼을 어떻게 발전시키고 싶은가

“우리나라 에너지전환만큼 어려운 일이다. 처음 시도한 플랫폼이고, 그 역할도 시대에 따라 계속 바꿔가야 하며, 그러려면 구성원들도 변해야 한다. 새로운 사람들이 계속 참여해 발전시켜야 한다. 포럼이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는 아직  과제다. 전문가 집단을 추구한 측면도 있는데, 걸맞은 전문인력 참여와 확충이 필요하지만 정치적 환경이 쉽지 않다. 지금이 가장 어려운 시절이다.”

- 학계 중진을 지나 원로급이다. 한마디 건넨다면

“전기학계가 전력산업을 이끌어야 하는데, 산업에 종속돼 있다. 이렇게 어려운 시절에 학계가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못한다. 반성해야 한다. 전원 논쟁이 불거지면, 일부 학자들은 원전도 하고 재생에너지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잘 모르는 사람이 똑같이 사이좋게 하자고 말한다. 비전문가에게 물어 얻을 수 있는 대답을 그들이 하고 있다."

-  요즘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해주나

“경제도 어렵지만 에너지 공급체계도 상당히 어려워져 단기간에는 풀기 어려울 거라고 말한다. 우리 때 시간적으로 해결하지 못해 너희들에게 넘기게 될 거라고. 지금까지 이뤄온 대한민국을 너희들이 지켜가야 할 텐데, 쉽지 않을 테니 열심히 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 후학들의 세상은 대단히 어려울 거라고 본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전영환. He is...] 1961년 부산 출생. 서울대에서 전기공학으로 학사·석사학위를 받고 전기연구원에 입사해 5년여간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이후 일본 유학길에 올라 1997년 동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경전력과 원자력발전기 축진동 문제를, 니콘정밀과는 반도체 제조장비 축진동제어를 연구했다. 1998년 전기연구원으로 복귀해 Facts and PQ 그룹장을 지냈다. 2000년대 전력산업구조개편 때는 자문용역을 맡은 美 PWC사 보고서를 감수하며 전력시장에 눈을 떴다. 2002년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로 임용된 이후로도 계통과 시장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분산전원 확대와 재생에너지 증가 대비를 주문해 왔다. 제2차 에너지기본계획과 6~9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위원, 전력거래소 비용평가위원장, 신뢰도 전문위원, 전기위원회 위원, 대한전기학회 부회장, 2050탄소중립위원회 에너지혁신분과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2020년부터 에너지전환포럼 공동대표로, 올해부터 상임공동대표로서 포럼을 이끌고 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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