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는 전력망 보강 소홀…尹정부는 수도권 반도체 공장
"10년 이상 장기계획 허구한 날 전원정책 변경 혼란 가중"

▲8~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 수립년도 기준 송전선로 확충 실적 (각 계획수립 당시 기준실적을 토대로 본지가 취합)
▲8~10차 장기 송변전설비계획 수립년도 기준 송전선로 확충 실적 (각 계획수립 당시 기준실적을 토대로 본지 취합) 8차 계획부터 최근 확정된 10차계획까지 건설된 송전선로 길이는 765kV 5c-km, 345kV 153c-km에 불과하다. 주요 간선망 역할을 하는 이들 송전선로 투자가 5년간 미미했다는 의미다. c-km는 송전탑에 실제 걸리는 회선수를 곱한값이다. 

[이투뉴스]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원전을 줄인다고 했다가 인제 와서 다시 살린다고 하면 어쩌란 건가. (원전을)수명연장하지 않는 만큼 발생하는 기존망 여유를 재생에너지가 쓰는 것으로 (송‧변전 계획을) 세웠는데, (계획이)틀어지게 된거다.”

정권마다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전원정책과 무(無)계획 전력다소비산업 지원정책이 장기송변전계획의 혼선을 초래하고 송전난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정부는 10차 전력계획과 탄소중립 녹색성장기본계획 등을 통해 ‘감(減)원전‧재생에너지 확대’로 압축되는 문재인정부 전원정책을 전면 수정한데 이어 최대 7GW를 소비하는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계획을 확정했다.

28일 <이투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전력수급과 계통운영을 맡고 전력당국 일선 관계자들은 내달 초 정비를 마치고 복귀하는 한빛원전 5호기(1000MW) 재가동이 반갑지만은 않다. 1~6호기 6000MW가 동시 가동되면 주말 원전감발 등으로 버텨온 이 지역 송전제약이 더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호남권 태양광은 상업용만 9GW이고, 봄‧가을에 연중 발전량이 가장 많다.

익명을 원한 한 관계자는 “전력망 보강이 거의 없던 상태에서 원전‧태양광이 최대로 들어오는 셈인데, 만일의 기술적 고장이나 사고 때 나타날 수 있는 현상(정전)들은 대단히 심각한 수준”이라며 “근본 대책은 송전선로를 하루빨리 확보하는 일이지만 기대하기 어렵고, 특단의 대책이나 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사정을 잘아는 현장 사람들만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 호남지역 전력수급 사정은 사면초가 신세다. 호남~충청~수도권으로 이어지는 북상 송전선로가 진즉부터 포화된 가운데 정부의 원전이용률 극대화 방침과 계절적인 재생에너지 발전량 증가까지 맞물리면서 대부분의 인근 석탄‧LNG를 세워도 종종 공급이 수요를 넘어서고 있다. 여기에 임시방편으로 동원하던 원전 출력감발 조치도 호기별 감발여력이 빠르게 소진되면서 한계로 치닫고 있다.

당장 올해 위기를 넘기더라도 송전선로가 확충되지 않은 한 일부 원전 정지나 대규모 태양광 출력제한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애초 문재인정부의 에너지전환정책에 의하면 한빛원전 1,2호기(각 950MW)는 각각 2025년과 2026년 40년 설계수명이 끝나 문을 닫을 계획이었다. 송변전계획에 관여한 한 관계자는 "한전에게만 뭐랄 게 아니다. 2년마다 뒤바뀌는 정책에 10년 계획을 어떻게 맞추겠냐"고 말했다.

▲송전선로와 송전탑
▲송전선로와 송전탑

현장은 이처럼 급박한데, 정부는 대증요법이나 되레 송전난을 가중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앞서 26일 산업통상자원부는 천영길 에너지정책실장과 주영준 산업정책실장이 공동주재한 ‘전력망 혁신 전담반(TF) 2차 회의’를 열어 대규모 투자 없이 유연송전기술 등으로 전력망의 수송능력을 높이는 NWAs(Non-Wire Alternatives) 기술 등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정부는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가 필요로 하는 대용량 전력을 적기에 공급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NWAs는 이미 시행하고 있는 것들이 대부분인데다 호남이나 강원권처럼 송전제약이 극심한 곳에서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여기에 수도권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을 제때 공급하려면 원전 5~7기 규모 공급력 확충과 클러스터까지의 대규모 송전선로 신설이 필요하다.

현 정부가 건설을 재개한 신한울 3,4호기 역시 강원권에서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345kV이상 전력망 추가 건설이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신한울~수도권 HVDC 송전선로조차 완공이 계속 지연되고 있고, 동해안 지역 신규 석탄화력 송전제약량은 매년 GW단위로 불어나고 있다.

송전분야 한 전문가는 "모두가 말로만 수요의 분산화, 공급의 분산화를 한다. 정부는 가뜩이나 어려운 수도권에 계속 반도체 공장을 때려짓겠다고 하고, 정치권은 지역별요금제가 표 떨어진다고 싫어라 한다"면서 "지자체까지 송전선로 확충에 비협조적이라 제때 원하는만큼 전력망을 건설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 역시 재생에너지 확대만 천명하고 송전망 확보는 등한시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본지가 2017년부터 올해까지 수립된 8~10차 송변전설비계획상 기준연도 송전선로 확충실적을 집계해 봤더니, 이 기간 전력 주요 간선망에 해당하는 345kV급 이상 송전선로 보강은 765kV 5c-km, 345kV 153c-km 등으로 사실상 정체상태나 마찬가지다.

전력계통분야 한 당국자는 “문제의 본질은 송전망 부족인데 언론 등이 여론을 아직 한참 모자란 재생에너지가 넘쳐 문제란 식으로 몰고가는 경향이 있다"며 "태양광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지만 비례해 망확충이 제대로 안됐다는 것도 사실이다. 9.15 순환정전이 수급계획의 실패라면, 지금의 사태는 망계획의 실패"라고 직격했다. 

한전의 한 내부 관계자는 “송전선로 계획은 10년 이상의 장기계획인데 전원정책은 허구한날 바뀌고, 설비 수용성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송전선로를 먼저 깔면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투자계획 확정이 쉽지 않다. 계획입지를 서둘러 도입하고 송전요금을 현실화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하드웨어(설비)는 장기계획이므로 소프트웨어(운영) 계획처럼 당장 할 수 있는 수단이라도 짜내야 한다"고 부연했다. 

전영환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공급체계의 전환은 전원믹스의 변화, 이에 따른 송전망 대책, 운영시스템의 고도화와 함께 수요의 유연화를 위한 전력시장체제의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면서 "현재는 정치권과 정부, 기득권의 이해관계로 단편적 접근에 머물고 있고, 이 모두를 아우르는 거버넌스 부재와 이해부족으로 안정적 전력공급시스템조차 붕괴되고 있다"고 개탄했다. 

전 교수는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다. 정부는 현재 추진하고 있는 전문규제기관 설립 검토만이라도 제대로 완수해 희망의 불씨라도 살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상복 기자 lsb@e2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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